스티븐 킹의 창작론 - 『유혹하는 글쓰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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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창작론 - 『유혹하는 글쓰기』 중

스티븐 킹에 따르면, 사실 세상에는 형편없는 글쟁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글에는 부사가 범람하고 목석처럼 죽어있는 인물들이 즐비하며, "지긋지긋한" 수동태 문장들이 우글거린다. 셰익스피어나 포크너, 예이츠나 버나드 쇼, 유도라 웰티 같은 위대한 작가들도 있지만 이런 천재들은 지극히 소수이다. 그는 좋은 글을 쓰려면 어휘력이나 문법, 문체의 요소들과 같은 기본적인 '연장'들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러나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들은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스티븐 킹의 '창작론'은 스스로 표현하기를 '연장론'이다. 항상 연장을 옆에 끼고있는 목수들처럼 작가들은 '연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1.
우리는 반드시, "많이 읽고, 많이 써야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성될 수 없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빼어난 스토리, 문장력, 어휘력 따위를 배울 수 있고 또 모방할 수도 있다. 창작 연습에 있어서 '모방'이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체나 어떤 표현에 대한 모방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도 있다. 문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문체를 개발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진 않으며, 폭넓은 독서와 끊임없는 자기 갱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건 두 말해야 잔소리. 여기서 스티븐 킹은 그 과정에서의 성실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소한 예절 따위에는 연연하지말고 아무 장소에서나 어떤 시간대에나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가차없는 집요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
두번째는 많이 쓰라는 것이다.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갖고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에 쓰도록 '사수'해야만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글쓰기를 시작하면 몇시간 정도는 너끈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글쓰기에서도 성실성만큼은 백번 천번 강조되어도 모자란다. 하루에 몇 페이지, 또는 몇천 단어 정도는 쓴다는 일정함을 견지해야할 것이다. 그때문에 작가에게 '건강'과 규칙적인 생활습관이란 무척이나 중요하다. 특히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다. 헤밍웨이도 건강관리를 위해 무진 애를 썼다고 하지 않은가. 그건 언젠가 영감이 갑자기 팍 떠올랐을때 집요하게 앉아서 글쓰는 것에 매진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글쓰기는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3.
집필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어떤 환경도 대단히 중요하다. 스티븐 킹은 이에 대해 문을 닫고, 문을 여는 곳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글을 쓰기 시작할때 작가는 문을 닫아야만 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까지 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고나면 그는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엄숙함, 서약, 실천성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전화기도 두지 않고 텔레비전도 두지 않는 게 좋다. 텔레비전은 작가의 적이며, 수시적으로 글쓰기의 흐름을 깰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은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을 종종 방해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들에게는, 방이 필요하고, 문이 필요하며, 그 문을 닫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목표'이다. 뮤즈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뮤즈는 우리가 아무리 안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날마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일곱시까지 세 시 정도까지 반드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 뮤즈는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이건 일종의 스티븐 킹 뮤즈론인데 참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의견인 것 같다.

4.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스티븐 킹은 "아는 것에 대해서 쓰라"는 저 유명한 격언을 최대한 넓고 포괄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일말의 도의 같은 것은 견지한 가운데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그러니까 글빨로 사기치지말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양식을 위해 진실을 기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우리는 문체를 모방할 수는 있으되 특정 장르에 대한 어떤 작가의 접근법까지 모방해서는 안된다. 모방이란 모방작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시각, 자기만의 접근법을 창안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5.
그리고 플롯! 스티븐 킹은 플롯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말라고 말한다. 장르작가의 대가로서는 의외의 주장이다. 그는 소설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작가다운 표현이다. 플롯보다는 직관에 의존함으로써 짜임새로서 이루어지는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예견되거나 제시된 '상황'을 꺼내어놓고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것이 자신의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상상력에서 출발한다는 것인데 어느정도 '플롯구성이론'에 배치되기도하고, 부합하기도한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플롯 창작에도 역시 일종의 '상황'같은게 존재한다. 한 인물이 있고 그는 어떤 사건을 경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왜? 같은 질문이 따라붙으면서 플롯 역시 구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티븐 킹이 배치되는 것처럼 말한 것이 내가 보기엔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다만 창작의 자세에 있어서는 일정 다른 부분이 있을 것 같다.

6.
묘사는 독자를 이야기로 끌어들인데 이것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오직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또 묘사의 적절한 분량을 아는 것도 중요한데 그 요령은 많이 써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어떻게"가 중요한데, 스티븐 킹 자신은 어떤 시시콜콜한 생김새를 구구절절하게 드러내는 것보다는 상황과 사건에 대해 묘사하는게 더 좋다고 말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겉모습보다는 장소와 분위기를 묘사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7.
대화문을 일상적이고도 진실되게 잘 쓰는 것도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언어란 기만적이고 특히 대화에서의 '말'은 더욱 그러하므로 그 말들 가운데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는 성격과 취향을 잘 간파하고 노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직접적인 내레이션보다는 인물들의 '입'을 빌리는게 좋으며, 설명보다는 제시가 더 좋은 방법이다. 대화, 즉 남의 말을 잘 듣는 귀를 타고난 사람이 좋은 대화문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음감'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과 같다. 우리는 대화문에 대해 그것이 현실에 부합되는지, 아니면 어떤 관념 속의 현실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들리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얼마나 진실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도덕이나 애꿎은 윤리의식보다는 현실에서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지가 중요하다. 진실을 억누르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 말이 추하든 아름답든, 그것은 그 말을 던지는 인물의 성격의 지표가 되며, 진실의 기준이 된다.

8.
현실에서 어떤 캐릭터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도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등장인물은 그것이 어떻게 발전하느가에 따라 전체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캐릭터의 욕망 자체가 사건을 바꾸거나 창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좋은 소설이란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캐릭터의 존재성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정신병자이더라도 독자가 그 인물을 통해 그 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그 인물의 내면을 보고 고뇌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 캐릭터는 좋은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