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을 '선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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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부리나케 지하철 플랫폼으로 뛰어들어갔을때 버릇처럼 신문 가판대 앞을 지나갔다. 어느덧 나는 시니컬한 눈빛으로 보수언론의헤드라인들을 훑어보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행태 자체가 다름 아닌 '복종'의 또다른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단발마적인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경향신문 헤드라인을 보았다. 모두. 지금 즉시. 거리로 나가 가판대에서, 편의점에서, 아직 오늘이 가지 않은 지금, 늦지 않았을때. '물질'로 된 오늘자 경향신문을 구입하라. 오늘자 경향신문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길 잃은 88만원 세대 온몸으로 '저항 선언'"

제목 그 자체는 흔한 미사여구일수도 이다. 그런데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아래 부제 <고대생 "자퇴" 대자보>라는 것이다. 나는 바로 지갑에서 600원을 꺼내어 신문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쉴틈없이 그 머릿기사를 읽었고, 그 기사는 여지껏 내가 신문을 통해 읽은 여느 머릿기사보다 충격적인 기사였다. 스스로 자신의 자퇴를 '자발적 퇴교'라고 이름 붙인 후에 그것 자체를 '사건'으로서 '선언'해낸 당사자는 다름 아닌 경영대생이었다. 04학번 김예슬. 대학 시절 이따금씩 마주치던 후배였다. 때로는 학교에서, 때로는 거리에서. 06년 또는 07년이었을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을 지나갈때 그와 마주쳤다. 레바논 파병반대 서명운동을 한다길래 그냥 서명이라도 할까, 하는 심정으로 가판대로 다가갔었다. 그런데 누가 뭐라고 말을 거는게 아닌가. 서명을 받던 한 사람이었고 이윽고 나는 그녀가 매우 낯익은 얼굴이라는걸 알아차렸다. C반 04학번 후배였다. 그가 <대학생나눔문화>라는 단체에서 활동한다는걸 안 나는 심정적 지지를 보내게 되었다. 내가 학생운동, 학생회운동 활동을 하며 스스로가 만든 고독에 갇혀 점점 지쳐가는 동안 그 또 자기 나름의 실천선을 만들며 자기 삶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지만, 우리가 가고있는 길이 같다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이렇게 마주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반가웠고 힘이 되었다. 고대 경영대에서 이런 인식을 갖고 나름의 '활동'을 감행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드문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년만에 다시, 뒤늦게 군대를 다녀와 학학대며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아침 신문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 누가 자신의 '자퇴'를 사건화시키기라도 했는가. 내가 아는 바 근 10년간 아무도, 그렇게 한 바 없었다. 나 역시 학교에서 삐져나와 지금은 영화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내 자신의 선택 그 자체를 사건화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기사에 따르면 어제 붙은 이 대자보 앞에는 몇 시간 내내 수십명이 연달아 줄을 이어 읽고 있었고, 그 옆에는 몇 장의 연대의 말이 적힌 A4 종이들과 장미꽃 세 송이가 붙어있었다고 쓰여져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바보처럼 말이다. 옴닥옴닥 들러붙어 움직일 수도 없는 출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멍청하게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용기에 너무도 뜨거운 울림을 받았고, 바로 어제까지 삶이 고단하고 외롭다며 징징대던 내 삶이 저 멀리에서 지지받고 있다는 착각때문이었다.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다. 내가 감복한 건 결코 그녀가 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 다른 학교 사람이었어도 나는 똑같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윤만능의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영화감독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선택을 하더라도, 이 각박한 세상의 공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항상 행동이다. 세상에 어디 아무도 모르는 안식처따위가 있겠는가. 이 세계가 근본적으로 뒤바뀌지 않는 한, 그 누구에게도 특별하고 외딴 곳의 안식처 따위는 없다. 오직 행동하고 용기있게 선언을 감행하는 삶 안에 안식이 있을 뿐이다. 그녀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녀의 선택이 만27살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는 거대한 사건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용기의 감행이란 세상의 변혁이 결코 따로 떨어진 각각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우리는 이 너무도 쉬운 진리를 아주 쉽게 잊곤 한다. 이데올로기의 무시무시함이 거기에 있다. 이성적으로 무엇을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시켜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거대한 착각이 있으며 도리어 이데올로기를 '지탱'시켜주는 막강함이 숨어있다. 이데올로기는 스스로 착각하는 자들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아는 것, 논평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진정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각본으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을 감행하는 것이며, 그걸 공공에게 선언함으로써 '사건화'시키는 것이다. 그로부터 뜨거운 울림이 있으며 연대의 힘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연대란 절실하고도 유일무이한 행동의 힘, 평등의 힘이며, 자유의 힘이다.

우석훈 등은 '혁명'이라는 레토릭을 서슴치않고 써냄으로서 자신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함정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 중에서도 가장 자유주의적인 레토릭의 함정에 빠진 것에 불과하다. 그가 말하는 '당사자운동'이란 전혀, 이 시대의 연대의 윤리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으며 실천을 체제 안의 무언가 세련된 것쯤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세련된 것이 변혁적인 것인가? 그거야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변혁적인 것이란 지저분한 것이며 끔찍하고도 처절한 것이다. 또한 구역질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김예슬씨 앞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를 찬양하면서도 그 힘겹고도 고되며 구역질나는 삶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이미 나는 그 구역질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주 종종 자기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지도 잘 알고이다. 이런 삶은 전혀 패셔너블하지 못하다! 우리는 결코, 당사자운동으로는 세계를 바꿀 수 없으며 그런 것은 아무 실천도 감행하지 않는 것과 같다. 때때로 '당사자운동'이란 그람시의 진지전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지난날 그람시를 이야기하며 얼마나 무수히 많은 386들이 이데올로기 앞에 자기 자신을 투행했는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은 언제든 다시 뛰쳐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며 자신들의 기회주의적이었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했지만 익명의 숲속으로 들어가 자기 이름을 삭제해 저항 속에 투신한 소수의 진정성 있는 동기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때때로 그들은 자기 세대의 이름으로, 민주당의 이름으로, 유시민의 이름으로, 한겨레신문의 이름으로 노동자운동의 폭력투쟁을 비난하며, 그들의 비도덕성을 고작해야 '비난'할 수 있을 뿐이다. 그거야말로 얼마나 쉬운가? 착각에 빠진 불우한 자들. 그들 중 절반이상은 정치적, 심리적으로 이미 '뉴라이트'가 되었는데 심리적으로만 뉴라이트가 된 이들은 자신이 '진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 그들이 진보인가? 강남으로 이사 가서 자기 자식을 외고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온갖 펀드 투자에 열올리는 그들이 어디 진보인가.

도리어 나는 김예슬씨의 '선언'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가 저항운동의 부활의 빛을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사소한 사건들에서이며, 그 울림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것이 울림을 받은 자들의 의무이다. 우리는 당연히 평등한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며, 삶 자체의 실천 속에서 모순들을 까발려야 하며, 일종의 예외(비상) 상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한 최고의 훌륭한 방법은, 다름 아닌 연대이며, 하나의 사건을 노정하는 선언이다. 정권은 5년이면 끝난다고 말하며 "기다리지"말라. 바로 그 '저주'아닌 '저주'가 이명박과 파시스트들에겐 가장 큰 힘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결국 우리는 5년이 10년이 되었음을, 10년이 20년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걸 피하고 그 반대의 길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길은 오직, '지금'-'즉시'의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