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쯤은 "한국 영화는 왜 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음 속에서.
이건 내 대학 전공이 영화 연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드라마틱하게 망해서, 두 눈 똑바로 뜬 채로 도시가 송두리째 불타버린 성 밖의 농노 같은 심경이다. 성 안에 있던 사람들 심경은 더 ㅈ같을 거다. 하지만 나같은 영화 애호가 혹은 한때 지망자의 기분도 더럽긴 마찬가지다.
쌤통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ㅈ같고, 기분 드럽고, 한심하고, 웃기다. 학교 다닐 땐 교수님들이 한심하다고 느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영화산업의 모순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은 그냥 기술만 가르쳤다. 한예종은 (이론 전공 제외) 기술학교가 확실하다.
그러나 영화 제작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은 기술만 배워선 안 된다. 영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영화의 제작 시스템은 어떠해야 하고, 지금은 어떤 모순들이 있는지, 스탭하다가 임금이 체불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오야지가 개새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을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친구들과 관계를 왜 잘 맺어야 하는지, 한예종 과잠 맞춰서 입고 다니는 게 왜 역겨운 일인지, 특히 과잠 입고 CF나 촬영 알바 하러 가는 게 왜 재수없는 짓인지 등에 대해 배워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런 주제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종종 학생들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그냥 일이 좀 안 풀려서 잠시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학교에 온 것처럼 보였다.
뉴스에는 '넷플릭스'나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영화산업이 무너졌다는 결론만 이야기하는데, 넷플릭스가 아주 우습게 한국 영화를 거덜낼 수 있을 만큼 산업의 토대가 허약했던 이유가 뭔지, 관객 대중 역시 별로 한국영화에 애정을 갖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선 고찰하지 않는다. 아무도 솔직하지 못하고, 진지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쌤통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가 영화산업의 건강한 토대를 키우기는커녕 지나치게 승자독식의 구조로 만들고, 병들에 만들다는 비판들에 대해 코웃음을 치던 제작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거의 망했다. 물론 벌어놓은 게 많으니까, 남은 여생 잘 사시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허탈하긴 할 것 같다. 쌤통이다.
영화산업이 무너지면서 영화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걸고, 간섭하고, 균열을 내고 싶어했던 어떤 사람들, 영화산업 속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던 꿈을 가졌던 사람들의 길은 아주 좁아졌다. 일자리가 사라졌다. 전업으로 조감독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 5명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다른 직군도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먹고 살 수 없으면 다른 일 해야 하는 거다. 이는 결국 한국 영화의 제작역량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 점은 매우 분하다.
한국 영화산업엔 좋은 제작자들도 많았겠지만, 바깥에서 보기에는 참 별로였다. 좋은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만들던 이야기 계속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대던 제작자들이 지배했다. 이들은 배우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여긴 나머지, 지들만의 상류층 라이프를 즐기다가 배우들에겐 아주 높은 출연료를 보장해가며 스타급 배우들의 몸값을 높이고, 제작비를 과도하게 높이면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도박으로 사업을 운용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도 이는 매우 미련한 짓이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망할 만했다.
그럼에도 아주 진지한 자세로 좋은 영화를 만들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스쳐지나간다. 대부분 영화산업에 진입하지도 못했고, 어렵사리 진입해도 금세 밀려났다. 이들이 쓴 좋은 시나리오들, 좋은 이야기가 될 만한 떡잎을 갖추고 있던 아이디어들은 채 다듬어지지 못하고, 멍청한 기획자들에 의해 빛도 못보고 사라졌다.
그 대신, 한철 장사 아주 독하게 잘 한 배우들은 모두 강남의 건물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