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정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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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치 소멸'에 대한 홍기빈 씨의 한탄을 조직가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그 한탄을 공유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 '현장 속으로 가야 한다'는 그 말 자체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노동조합이나 자기 삶의 현장 등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홍기빈의 말에 콧방귀를 뀔 것이다. 자신이 조직가로 살고 있기에 공감한 것이라면, 취향은 존중하지만 메신저를 잘못 선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관심이 없으면 시야도 좁을 수밖에 없다. 잘 모르시겠지만, 현장에서 미래를 찾고자 하는 활동가들은 이미 소리 없이 여러 현장에 있다. 내 생각엔 소위 지식인들이 그 현장의 고민을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더 많아 보인다. 자신이 보는 사회상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허공에 떠있는 말들로 현장과 담론 사이에 교각을 놓는 일을 방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좌파 활동가는 수십가지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생각나는대로 꼽자면) 1) 노동 현장과 일상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조직해야 하고, 2) 이미 벌어지고 있는 많은 '대중운동들'을 급진화해야 하고, 3) 사회 담론과 현장을 연결시켜야 하고, 4) 사회적 논쟁에 개입해야 하고, 5)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니까, 다 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에라도 조금씩 기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돌보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제와 실천들이 완전히 분리되고 고립되고 있는 현 상황에 개입하기 위한 보다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구상을 부상시켜야 한다. (2월 1~3일 열리는 체제전환운동포럼과 3월 24일 열리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라든지…)

한데 홍기빈이 지적한 대로, 아래로부터 현장을 조직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방기된다는 점은 사실이다. 웃긴 점은 그런 일을 조직적으로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훈계조로 그걸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글의 거친 어조로 볼 때 홍기빈은 실제 어느 현장들에서 어떻게, 얼마나 많은 활동가들이 '현장'에 포진해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파악된다면 저것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겸손한 태세로 사회운동 혹은 좌파의 과제에 대해 '말걸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냥 아무도 그걸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설령 저 말의 내용에 공감한다고 해도, 저 거만함이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2022년과 2023년 9월에 기후정의행진은 3만여 명 규모로,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대규모로 진행됐는데, '기후 운동'판에서 시장주의적 견해를 가진 논자들이 온갖 비판을 퍼붓는 가운데에서도 반자본주의적인 기조를 유지하고자 애썼다.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속해서 대규모로 모일 수 있는 동력이 그들이 평소에 지역과 현장에서 '아래로부터 조직화'를 실천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피플들이 '좌파'의 범주를 어떻게 특정하는지 알 수 없지만, 시야가 좁은 사람은 자기가 보던 것만 볼 것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으로 기꺼이 더 다가간 사람이라면, 가능성과 잠재성, 지금 정확하게 필요한 메시지를 생각할 것이다. 반면 페이스북에서 '좌파'와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 뉴스피드만 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기빈의 글은 어떤 사람들에겐 귀감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허수아비 때리기일 수밖에 없다. '좌파 지식인'의 처지가 대체로 이렇다. 어떤 사안이든 비평을 통해 개입하려면 뭘 알아야 하고, 운동에 대해서도 비평하려면 조사가 필요한데, 왜 운동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최소한 저런 말을 저렇게 자신있게 하려면, 소박하게라도 조직가이자 활동가가 되기를 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역을 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역량과 조건에 맞게 택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결심하고 자기비판을 동반해 '따봉' 버튼 누른 것이라면 환영. 그렇지 않고 그냥 '한심한 좌파들'에게 한마디 훈계하고 싶은 것이라면 실패.

이러면 안되는데 <아수라>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