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소수의 "시민사회 원로" 인사들이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것마냥 거간꾼 노릇을 하면서 진보정당들과 민주당 사이를 오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들에게 신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위성정당 노릇을 하라고 종용했습니다. 이분들이 민주당 정치인들과 얼마나 친한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 활동가들은 이들에게 이런 짓을 하라고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는 결국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마음을 바꾸었고, 높은 윤석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지지율이 정체 상태인 민주당에게는 실리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지를 제공했습니다.
한데 이 원로들이 속한 각 단체에서는 자기 단체를 대표한다고 나선 대표들에 대한 반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도 몇몇 인사들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논의된 바 없음에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명함을 달고 거간꾼 노릇을 한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회는 연대회의에서 논의된 바 없으니 직함 다 빼라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시민사회의 독립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들이 목소리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연대는 위성정당에 대해 비판 목소리를 내왔고, 오랫동안 정치개혁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장이라는 분들은 앞장 서서 위성정당을 추동하고, 진보정당들을 압박하고, 같이 정치개혁운동을 해온 이들을 배반했습니다.회원들과 일선 활동가들의 열망을 뭉갰습니다. 이런 행위는 시민사회운동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대표나 운영위원장은 개인 활동 맘대로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옳다고 자만해 온갖 원칙과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짓을 하라고 대표나 운영위원장을 시킨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분들은 사회운동의 역사성과 진보정당 존재 가치를 공격하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당 위성정당의 품 속에 들어가는 것은 진보정당운동에게 파산 선고입니다. 한 번 위성으로 전락하면 그 후에는 누구도 그 세력을 독립적인 정치세력이라고 간주할 수 없습니다. 지금 진보당은 그 길을 택한 것이고, 진보당의 고위급 인사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의 역사를 부정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보당에게 몇 석의 의석을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진보당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할 것입니다. 이는 진보정당운동의 대의를 지지해온 노동자 민중에게도 배반이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는 더 큰 배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오후 녹색정의당도 이에 관한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다소 아쉬움을 느끼지만 벼랑 끝에서 역사적 파산을 선택하지 않길 바랍니다.
종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엔딩과 역사적 파산이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록을 남기면 그것은 오히려 재출발의 힘이 되지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역사적 파산의 길을 택하면, 다시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녹색정의당 전국위원들이 의석에 눈 멀어 원칙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역사를 부정하지 말고, 사회운동과 함께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갖길 바랍니다.
2월 15일 오후5시~2월 16일 자정 사이 개인 778명, 단체 37개가 연명하였습니다. 이 연서명 말고도, 노동조합과 여러 단체, 연대체에서도 성명이 발표됐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