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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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1호’ 혜택을 받게 된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박원순 서울시장(55)에게 사회공헌 선언으로 화답했다. 이 대학 학생자치기구 대표단은 17일 오후 박 시장과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56)을 초청해 사회공헌 선언식을 열고 “국가와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학업과 자기계발에 매진하고 시민들을 돕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자신이 지닌 재능과 힘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희극적으로 귀결되다니. 사회공헌이라는게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결국 대학의 구성원들로 구성된 자치기구 스스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모종의 효율적인 '지식/관리노동자' 배양과 '자기계발 이데올로기' 역할의 정상화로 귀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애시당초 '반값등록금'이라는 요구로 만들어진 민생불안의 균열점이 '서울시립대'라는 특정적이고 특수한 예에 한하여 미봉되는 수순을 밟게 되었고, 박원순이라는 새로운 자유주의 이데올로그의 출현 속에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수준에서 마무리. 쫑~ 대다수 청년들에게 괴로운 삶은 계속되겠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느냐는게 대세 아니겠나? 이거 정말 참...아름답구나!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본을 위한 노동력 재생산의 장치로 전락한 대학을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없는 '교육비 절감'의 요구는 자본의 효율적인 순환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뿐이다. 그러니까 잘 작동되는 자본주의를 위한 요구로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냉소하면서, "그러니까 반값등록금 투쟁은 아무 쓸모 없었다"고 평가하기 보다, 대체 왜 그 균열지점에서 아무런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나는 열린 정세에서 냉소적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초반의 사태를 관망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머뭇거림은 결국 정념적으로는 알리바이("우리는 그것에 휩쓸리지 않았다!")를 안겨주겠지만, 역사적으로는 명백한 패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시립대 반값등록금을 어거지로 실행하면서 대학원생들의 연구 장학금을 절반으로 삭감했다는데 이야말로 이 '반값등록금' 실시가 얼마나 기만적으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대학의 지식-연구 기능은 무기력하게 제거하고, 노동력 재생산의 기능만 효율적으로 만들어버린것 아닌가?

사회공헌이라는 것도 결국, 사회적 차원에서 제공되는 공공서비스 노동을 '사회공헌'이라는 이름으로 도덕성을 부여하고는 여기에 필요한 임금을 노동의 영역에서 제거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 속에서 제거한 공공성의 영역에서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1000명이라는 구체적인 노동력 투여 숫자를 요구하는 것이 안리까. '노동하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김대중 정권시기부터 추진되었던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이 정세적 시효성을 획득한 아주 효율적인 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비판적 태도가 매우 냉소적인 태도처럼 느껴지겠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결과적으로 밑도 끝도 없는 사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