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 대표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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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대표 경선중이란다. 내게도 무려 세 건 정도의 문자메시지가 왔었다. 통합민주당 대표경선 국민선거인단에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대체 내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안건지! 그리고 이렇게 아무한테나 마구마구 스팸문자를 쏟아내도 되는건지!)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곳곳에서 종종 이런 이야기들이 들린다. '참여'는 민주주의의 힘이며, 통합민주당 대표 경선 국민선거인단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민주주의를 위한 흐름에 힘을 보태자고! 그러나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함의들이 제거되어있다. 나는 이 함의들이 우리를 정치적으로 좀 더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이들이 모든 현실적 억압의 근본원인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이명박'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정도로 무지하고 편협하며 반민중적인 정권임에 틀림없다. 이명박 정권 내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면 누구나 자본과 공권력으로부터 탄압받아야 했으며, 지난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그리고 용산 철거민 학살에서 볼 수 있었듯이 생존을 위한 외침은 짓밟혀왔다. 특히나 민중운동판의 주류파인 NL진영과 참여연대 같은 NGO단체의 활동가들은 이런 탄압이 죄다 이명박의 부도덕함과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처럼 떠들며 "반MB"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내세어왔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나는 이런 방식의 몽매한 논리가 우리로 하여금 보다 근본적인 모순을 응시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몽매함은 저 '통합민주당 선거인단 모집'에서 드러나고 있다.

첫째. 지금 통합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요지부동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명숙은 누구인가? 일단 그는 지난 2006년 평택 대추리 투쟁 당시 대추리와 도두리 황새울 벌판을 흔적도 없이 쓸어버린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었다. 소위 말하는 행정대집행으로 이 두 마을 주민들 수백여명은 모두 고향을 잃었고, 당시 대추초등학교에 있던 수천명의 사람들은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에 뭇매를 당했다. 그날의 기억은 너무 생생해서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그는 국무총리시절 추진한 한미FTA에 대해서도 "한미FTA는 성공적으로 이뤄져야한다"거나, "한미FTA에 반대의 뜻을 밝힌 시민단체에는 국고보조금 지원을 중단해야한다"고 발언한 장본인 이었다. 지금에 와서 '노무현 정부때의 FTA는 이익균형이 맞았다'고 변명하는 것은 FTA의 본질이 민중이 아니라 철저히 양국 자본을 위한 것이며 여러 공공재를 사유화/시장화하는 시도임을 덮어버리려는 치졸한 변명에 가깝다. 요컨대 그는 '가히 이명박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통합민주당의 국민선거인단 대모집은 한국 정치를 미국식 양당제로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라는 점이다. 한국이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어려운 제도적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미국의 정당정치가 모범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현재 미국의 민중들은 OCCUPY WALLSTREET 투쟁을 통해 제도정치가 담지 못하는 현실의 공백들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제도정치가 아닌 '거리'와 '광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확장시키고 있다. 헌데 이런 썩은 제도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자들이 바로 김기식이나 문성근 처럼 '빅텐트론'을 주창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심지어 여기엔 저 유명한 핸섬가이 '조국'도 포함되어있다.(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열성적으로 통합민주당 국민선거인단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양당제가 고착화되면 결국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을 만들어나가고자 존재하는 진보정당운동을 파괴하고 말것이다. 당 뿐만이 아니다. 노동자운동이나 다른 여타 사회운동에도 강력한 타격으로 돌아오고말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고착화된 양당제의 틀에서 시민/노동자 일반의 정치주체화는 더 후퇴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것이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는 대표가 선출되어야 합니다."라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도 이것은 거시적이고 근본적 차원에서는 분명히 민중운동의 퇴보로 귀결될 것이다. 요컨대 한미FTA 폐기는 사회운동 그 자체의 강력한 힘에 의해 제도정치권 자체를 제어하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지, 대중운동(들)의 양당제 함수로의 인입으로는 (결국 민중운동 그 자체의 역량은 '제도정치'에 대해 기대를 갖는 것이 전부인냥 떨어뜨리기 때문에) 한계적일뿐만 아니라 매우 한시적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결국 우리 각자의 정치주체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정치나 사회의 변화에 대해 갖는 모종의 열의를 '투표'라는 일회적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5년동안 단하루만 주인 행세를 할 수 있으며, 다른 1825일동안은 철저히 노예화된 국민으로서 산다.) 대의제적인 제도 안에 가두어버린다. 그러니까 정권 교체 하나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지배세력들에 대한 이런 비판에 대해 "좌파는 항상 이렇게 궁시렁대기만 하는 존재인가?" 라고 되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반응은 항상 "최악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한다."는 식으로 정치를 기만해온 저 자유주의자들의 오래된 대응논리가 되고말았다. 이제 우리는 이 가짜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 정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최악을 선택하든 차악을 선택하든 그것은 항상 소수의 중산층과 인텔리들에게는 차차선쯤 될지언정, 노동자/민중에게는 최악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만약 여전히도 노동자들에게 '김진숙'이나 '쌍용자동차'라는 기표를 들며 그것의 '현실적 대안'이 마치 '빅텐트' 안에 죄다 들어가는 것뿐이라며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변혁을 위한 사회운동의 진정한 적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